“저는 진심으로 생각해요. ( )의 진정한 매력은 그 내적인 지성미, 교양미, 또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하고 매력적인, 휴매니티(humanity)한, 인격적인 세계에 있다는 것을… 그러한 모습은 굉장히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잊히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걸로 저는 상상하거든요?” -앙드레김
출연:
고근호 김무영 김민훈 남화연
목민수 박그림 박승혁 박시영
송민정 니콜라이 안 앙드레김 양윤화
윤정의 이동현 이병재 이유성 이소정
이창현 임재균 전명은 최산
최하늘 허유 현남 홍준표 COM
키워드:
로맨티시즘, 판타스틱, 인털렉추얼, 아카데믹, 이메이지, 플리즈, 오리엔탈, 에스프리, 포멀, 인포멀, 섹스어필
생각들: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괄호 부분에는 본래 ‘여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2026년 여름에 개최 예정인 기획전 <앙드레>는 우선 여기에 ‘작품’이라는 익숙한 명사를 넣어보고자 합니다.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생애를 짧게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앙드레김은 1935년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지금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 김진산과 어머니 강복순 사이에서 2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김봉남. 본래 배우를 꿈꿨다고 합니다. 복장학원에 1기생으로 입학 후, 이듬해인 1962년 서울 소공동에 의상실 ‘살롱 앙드레’를 열며, 국내 ‘남성 디자이너 1호’로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내면의 아름다움과 지성미, 교양미가 담긴 패션세계”를 강조한 그는 유행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해석한 동양적 감성과 로맨티시즘에 입각한 독창적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그는 패션쇼를 음악, 미술, 연극 등 예술 장르가 융합된 ‘종합예술’로 해석하고 수많은 쇼를 진두지휘했습니다. 5대의 TV와 15개의 일간지를 구독하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한 그의 패션쇼는 한국 대중문화계의 스타 등용문으로 꼽혔습니다. 자신의 의상이 ‘오백 년 후, 천 년 뒤에도 기억’되길 바랐지만, 이제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 이는 드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1982년 당시 생후 18개월이던 아들 중도 씨를 입양해 정상과 사랑을 쏟으며 키웠고, 그의 예술 유산을 이어 받아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0년 8월, 앙드레김은 2005년 발견된 대장암이 악화되어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획전 <앙드레>는 아티스트를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아티스트란 무엇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미적 세계를 끝까지 완성해내는 사람”이라고 잠정 결론을 짓고, 저는 앙드레김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유행을 읽는 사람이기보다, 유행이 비켜 서도 끝까지 유지되는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한 아티스트였습니다. 흔히 아티스트를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사회 문제, 개인 서사, 정체성, 미술사적 맥락, 정치적 비판 의식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앙드레김식 관점에서 이 정의는 너무 얕습니다. 그는 거의 설명하지 않았고, 성명서를 쓰지 않았으며, 자신의 쇼를 사회 비판의 도구로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의 세계를 즉각 알아봤습니다. 이것은 앙드레김이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떠올립니다. 아티스트는 ‘의견’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석 이전에 인식되는 세계를 만드는 사람 아닐까요? (설명에 의존해야만 존재하는 작품의 해석이란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한 일인가?)
과잉, 순백, 장식, 비현실성, 동화적 서사 등 앙드레김은 늘 같은 레파토리만 반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존 발데사리는 “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라고 반복해 적었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요?) 그의 취향과 미학은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바라보는 세계의 규칙 아니었을까요? 취향을 넘어서 ‘법칙’을 만드는 단계로 나아가는 작가란 어떤 존재일까요? 유미주의자와 매너리즘의 경계에 서서, 그 세계의 끝에 도달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작동하는 법을 정하는 사람 아닐까요?
많은 작가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듭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만이 우리를, 그 스스로가 빠져나올 수 없는 세계를 만듭니다. 앙드레김의 의상과 쇼는 늘 비슷했지만, 그래서 실패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요? 그 반복은 고갈이 아니라 ‘판타스틱’한 의식(ritual) 이었습니다. 아티스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가장 냉정한 정의는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아티스트는 매번 새로워지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같은 세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그 유지에는 고립, 오해, 시대착오, 조롱까지 포함됩니다.
엑스라지의 기획전 <앙드레>는 작가와 함께 이러한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 아티스트가 추구한 (설명 이전에 인식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 아티스트는 어떤 세계를 끝까지 밀고 가고 있는가?
-이 아티스트는 아래 문장의 괄호에 무엇을 넣을 수 있는가?
“저는 진심으로 생각해요. ( )의 진정한 매력은 그 내적인 지성미, 교양미, 또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하고 매력적인, 휴매니티(humanity)한, 인격적인 세계에 있다는 것을… 그러한 모습은 굉장히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잊히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걸로 저는 상상하거든요?”

